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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0월 20일. 설악산 천불동계곡에서 귀면암을 향해 가는 길.하루 20~25㎞ 속도로 남하단풍은 하루 최저기온이 5도 이하가 되면 들기 시작한다. 기상 전문 IT 업체인 ㈜웨더아이에 따르면, 올해 첫 단풍은 평년보다 늦을 전망이다. 9월 기온이 평년보다 높고, 10월도 그런 추세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첫 단풍'은 산 정상에서부터 20%가량 물들 때, 절정기는 80%가 물드는 상태를 각각 가리킨다.우리나라 단풍은 대청봉을 시작으로 하루 20~25㎞의 속도로 남하한다. 9월 29일 설악산을 시작으로, 중부지방에서는 10월 20~21일, 지리산과 남부지방에서는 10월 20~30일에 첫 단풍을 볼 수 있다고 한다.어느 작가는 단풍을 두고 "늦가을 환락이요, 빨노란 열정이며, 주검 앞 성숙이다. 동장군(冬將軍)을 지척에 두고 하늘이 내려 주신 환타지"라고 표현했다. 보통 일교차가 크고 강수량이 적고 양지바른 곳의 단풍이 아름다운데, 우리나라는 딱히 어디라고 할 것도 없이 전 국토가 단풍 명소다. 캐나다 메이플로드의 장엄함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아기자기한 맛은 결코 뒤지지 않는다.사실 단풍은 나무가 겨울나기를 위한 몸부림이다. 날씨가 추워지면 나뭇잎과 가지 사이에 떨켜(離層)가 만들어져, 줄기의 양분이 잎으로 이동하지 못하면서 초록색 엽록소가 파괴된다. 대신 다른 색소들이 나타난다. 보통 안토시아닌이 많으면 빨간 단풍, 카로틴이나 크산토필이 많으면 노란 단풍이 된다. 또 타닌(Tannin)성 물질이 산화 중합되어 축적되면 갈색 단풍이 되기도 한다.설악산에 이어 두 번째로 단풍이 드는 오대산은 노란 단풍이 일품이다. 올해 오대산은 10월 4일 첫 단풍이 들고 17일이면 절정으로 예상된다. 보통 상원사에서 적멸보궁을 거쳐 1.5㎞의 급경사를 지나 비로봉에 도착하는데, 등산로 옆으로 노랗게 우거진 단풍이 그윽하다. 비로봉과는 좀 떨어져 있는 노인봉 코스는 오대산 단풍의 백미다. 소금강 계곡에서 오르는 기다란 코스도 장관이지만, 반대편 해발 1000m의 진고개정상휴게소에서 시작하는 4.1㎞ 코스는 초보자도 오를 정도로 쉽다. 나무데크로 된 계단을 숨가쁘게 오른 뒤 정상까지 2㎞에 가까운 평지 단풍 터널이 이어지는데, 어느 등산객은 "천상을 편안하게 거니는 기분"이라고 말했다.다시 설악산으로 돌아온다. 10월 21일을 전후하여 천불동계곡과 주전골을 놓치면 안 된다. 필자는 50대 후반이 되어서야 천불동계곡 단풍을 처음 보았다. 뉴질랜드 남섬, 캐나다 로키, 스위스 그린델발트, 브라질 이구아수폭포 등 세계적 절경을 죄다 보았다고 자랑했지만 거기에 뒤지지 않는 천불동계곡은 왜 이제 왔나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외설악에 있는 천불동계곡은 설악동 소공원에서 비선대까지 3㎞의 완전 평지를 걷고 나면 시작된다. 비선대부터 완만한 오르막 숲길을 따라 걷다가 약간 가파른 고개를 숨가쁘게 오르면 귀면암에 도착하고, 계속 진행하면 오련폭포에 이른다. 깎아지른 듯한 바위 골짜기 사이에 5개의 폭포가 연이어 절경을 이룬다고 해서 오련(五連)폭포다. 거기에 울긋불긋 단풍이 채색되니, 가히 '미니 그랜드캐니언'과 '미니 메이플로드'의 결합이다. 오련폭포를 더 지나면 양폭대피소와 천당폭포에 도착한다. 즉 천불동계곡은 소공원부터 비선대까지 3㎞, 비선대부터 천당폭포까지 3.5㎞ 거리다. 사진 찍느라 조금 지체하면 왕복 6시간은 훌쩍 가 버린다. 이런 천불동계곡도 시기를 잘 골라야 한다. 작년에는 10월 중순에도 단풍이 없길래 '올해는 폭망'이라고 생각했는데, 느닷없이 10월 하순이 되자 절정을 이루었다. 역시 예측불허 지구온난화 탓인 듯했다.내설악에 있는 주전골은 '미니 천불동계곡'으로 불린다. 오색약수터부터 용소폭포까지 3.2㎞ 구간인데, 코스가 평탄하고 풍광은 빼어나다 보니 성수기에는 주차대란이 벌어진다. 2~3시간이면 왕복이 가능해 관광객들 교대가 잦은 편이라, 아침 일찍 도착하지 못한다면 차라리 오후 늦게 가는 것도 방법이다. 특히 올해는 주전골 코스에서 갈라지는 곳에 있는 흘림골이 7년 만에 다시 개방됐다. 난이도가 있고 낙석위험 구간이 많지만, 비경을 간직한 곳이라 단풍 팬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고 있다. 다만 흘림골은 인터넷 예약제로 하루 5000명만 입장할 수 있다.



2018년 10월 19일. 남녀노소 모두 쉽게 갈 수 있는 설악산 주전골.7년 만에 개방된 흘림골서울에 산다면 북한산을 놓치면 안 된다. 북한산은 10월 17일 첫 단풍이 시작되어 10월 30일쯤 절정을 이룰 전망이다. 도선사에서 출발하는 백운대 코스를 비롯, 북한산 전체가 단풍 명소다. 등산이 부담스럽다면 둘레길도 인기다. 특히 북한산 둘레길의 21구간인 우이령길은 6.8㎞의 편안한 길에 불타오르는 단풍으로 유명한데, 하루 1000명 탐방예약제라는 점을 잊으면 안 된다. 서울이라고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깊은 단풍의 판타지에 빠진다.10월 중순에서 하순까지는 전국적으로 단풍이 확산되는데 가야산이 19일, 한라산·지리산·계룡산이 20일, 속리산이 21일, 내장산이 30일로 첫 단풍이 예상되고 있다. 물론 절정기는 약간씩 차이가 난다. 지리산은 28일, 가야산은 30일, 한라산·속리산은 31일, 계룡산은 11월 2일, 내장산은 11월 5일이 가장 멋있을 전망이다.일반인은 등산화가 아닌 슬리퍼를 신고도 갈 수 있는 단풍 명소를 원한다. 속리산 세조길이 대표적이다. 법주사에서 저수지와 세심정을 거쳐 복천암까지 3.2㎞의 산책로를 가리킨다. 조선 세조가 피부병 치료차 왔던 곳이라고 한다. 코스 전체가 포장도로와 데크 등으로 평평하게 구성되어 남녀노소 모두 단풍을 감상하며 걷기에 좋다.내장산도 평지 단풍에 속한다. 내장산은 붉은 단풍, 노란 단풍, 청(靑)단풍 등 단풍의 끝판왕이다. 잎이 작고 색깔은 앙증맞게 진한 애기단풍도 많이 볼 수 있다. 일주문에서 내장사까지 300m의 단풍터널은 정말 이름값을 하는 곳이다. 그래서 내장산은 매년 방문해도 그 풍성함 덕분에 후회가 없다. 최근엔 단풍 식재를 많이 했는데, 예전보다 짜임새는 있지만 자연미는 줄어든 것 같아 조금 아쉽다. 내장산은 11월 중순까지도 진수를 맛볼 수 있다.같은 내장산국립공원에 속하지만, 전북 내장산 내장사와는 반대편에 있는 전남 백암산 백양사 단풍도 최근 핫플레이스다.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제38호인 백암산 백학봉의 기암을 배경으로 앞쪽 쌍계루의 연못에 비치는 단풍은 늘 사진작가들의 사랑을 받는다. 어느 네티즌은 스위스 마테호른에 빗대어 '백테호른'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2021년 11월 5일. 전북 고창의 선운사 옆으로 이어진 도솔천 풍광.'백테호른'을 아십니까평지 단풍에는 전북 고창 선운사를 빼놓으면 안 된다. 선운사 단풍은 11월 중순에 가도 멋진 풍광을 감상할 수 있다. 주차장에서 일주문을 지나 평지를 계속 걷기만 하면 된다. 멀리 선운산 도솔암까지 가도 되지만, 보통은 선운사와 그 옆으로 길게 흐르는 도솔천만 구경해도 제대로 된 단풍 감상이다. 도솔계곡은 명승 54호로 지정됐는데, 도솔천 물 위로 흐드러진 단풍이 비치는 모습은 역시 사진작가들이 즐겨 찾는 포인트다. 그런가 하면 경북 청송 주왕산 역시 대전사에서 출발하여 용연폭포에 이르기까지, 산책하듯 길다란 평지 길을 다녀오면 기암괴석과 단풍을 동시에 만끽할 수 있다.전국 모든 수목원에서도 컬러풀 단풍 잔치가 벌어진다. 경기도 가평 아침고요수목원은 단풍 중에도 가장 싱그럽고 예쁘다는 당단풍이 많다. 경기도 곤지암에 있는 화담숲은 LG그룹에서 운영하는데, 모노레일이 단풍 숲 사이를 오르내리는 모습이 이색적이다.



2021년 11월 9일. 연세대학교 신촌캠퍼스의 단풍.도심 평지 단풍의 백미는 대학 캠퍼스에서도 찾을 수 있다. 관악산 자락에 있는 서울대 캠퍼스, 고딕 양식의 건물이 아름다운 경희대, 고풍스러운 강의실의 이화여대 단풍도 좋지만 필자는 연세대 신촌캠퍼스를 첫손에 꼽고 싶다. 캠퍼스는 상대적으로 보온이 잘 되어서인지 11월 하순이나 12월 초까지도 괜찮은 단풍을 구경할 수 있다.이 밖에 연곡사를 지나 계곡과 어우러진 색동 단풍으로 유명한 지리산 피아골, 원효대사와 요석공주가 사랑을 나눈 장소답게 농염한 단풍이 자랑인 경기도 동두천 소요산, 차로 드라이브하면서 새빨간 단풍을 즐길 수 있는 대구 팔공산 순환도로, 순창 고추장을 닮은 빨간색 애기단풍으로 최근 각광받는 순창 강천산 등도 손꼽히는 단풍 명소라고 할 수 있다.문학평론가이기도 한 김기석 청파교회 목사는 이런 예화를 언급했다. 하나님이 천국에서 어느 목사를 만나 물어보니 한국에서 왔다고 대답했다. 하나님은 "그래 수고했다"고 하면서 "그런데 너는 설악산 단풍은 가 보았니"라고 물었다. "아뇨, 제 업무에 너무 바빠서 볼 시간이 없었습니다"라고 목사가 답했다. 그때 하나님은 "아니 내가 거기에다 가장 멋진 걸 만들어 주었는데 너는 그것도 보지 않았느냐"라고 반문하셨다. 너무 바빠서 멋진 단풍조차 구경할 여유가 없거나, 단풍을 보고도 아무런 감흥이 없는 현대인의 메마른 감성에 대한 질책이리라. 그러니 이번 가을에는 단풍 사랑을 제대로 해보시는 게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