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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호 부인 “‘아동학대’ 그 말이 제일 속상”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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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단아리 댓글 0건 조회 2회 작성일 19-11-17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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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소정 기자] 배우 임호의 아내 윤정희가 MBC ‘공부가 머니’ 방송 후 쏟아진 비난에 속상했다고 토로했다.

MBC ‘공부가 머니’ 캡처.
15일 방송된 ‘공부가 머니’에서는 임호-윤정희 부부가 재출연했다. 지난 8월 사교육 1번지 대치동에서 삼남매 교육을 시키고 있는 배우 임호와 부인 윤정희가 출연했다.

임호 부부는 2010년에 결혼해 9살 딸 임선함, 7살 아들 임지범, 6살 아들 임준서를 두고 있다.

당시 방송에서는 일주일에 34개의 학원·방문학습지 등 스케줄을 소화하는 삼남매의 일상이 그려졌다. 방송 이후 임호-윤정희 부부는 ‘지나친 사교육’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윤정희는 “아동학대. 그 말이 제일 속상했다”며 눈물을 흘렸다. 그는 “어머니들이 내게 쓴소리를 많이 하시는데 다 같은 마음이지 않을까 싶다. 자식이 잘 되길 바라는 마음. 그건 다 똑같은 마음일 거다”고 말했다.

이어 “나도 같은 마음으로 시작한 건데 욕심이 과해져서 아이들을 힘들게 했다. 그걸 알기에 도움을 받고 싶었다. 그래서 고민 끝에 출연한 거다”라고 했다.

재출연한 이유에 대해 임호는 “육아만이 아니라 아이들의 교육으로 고민하는 학부모들이 우리 가족을 통해 도움과 위안을 얻길 기대해본다”라고 설명했다.

이날 공개된 아이들은 지난 방송과는 확연히 달라졌다. 사교육을 줄이니 아이들은 부모와 함께 하는 시간이 늘었다. 가족들은 함께 게임을 하거나, 책을 읽었다. 임호-윤정희 부부도 아이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임호는 “둘째 지범이는 수학을 좋아하지만 독서를 싫어했다. 그런데 솔루션 받았던 수학 교재로 바꾼 후 흥미도 붙이고 누나를 이기기 위해 책을 많이 읽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김소정 (toystory@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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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 고정간첩단 사건 피해자 김순자 씨가 12일 서울 용산구 민주인권기념관(남영동 대공분실)에 열린 '나는 간첩이 아니다-오늘을 행복하게 살아가려는 그들의 이야기' 전시회에서 관람객이 선물한 꽃을 들고 있다. /이동률 기자

삼척 고정간첩단 사건 피해자 김순자 씨…재심 중 검찰·법원에 두 번 눈물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서울 용산구 남영동 대공분실(현 민주인권기념관) 건물 5층. 군사 정권 당시 국가에 간첩으로 조작된 피해자들을 위한 사진치유전 '나는 간첩이 아니다-오늘을 행복하게 살아가려는 그들의 이야기'가 한창 열리고 있다. 이곳에서 간첩 조작사건 피해자 김순자(74) 할머니를 만난 건 12일 정오를 조금 넘긴 시각이었다. 김 할머니는 전시회 막이 오른 2일부터 거의 매일 이곳을 찾는다. 역사의 산 증인으로서 해설위원을 자처한 김 할머니는 관람객이 건넨 붉은 장미 몇 송이를 가슴에 소중히 품고 잊지 말아야 할 역사를 회고했다. 국가 공권력에 의해 아버지를 잃은 형장 사진에 관람객의 눈길이 머물자, 김 할머니는 결국 눈물을 쏟았다.

◆"첫째를 잘 키워야 한다" 사랑 받은 장녀

김 할머니의 고향은 강원도 삼척이다. 호롱불도 없던 시대, 빈 사이다병에 심지를 박아 촛불을 켜는 할아버지 모습이 지금도 선하다. 모두가 어려웠던 시절이지만 장녀로 태어나 가족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몸이 불편해 젖이 안 나왔던 어머니 대신 할머니 젖을 물었고, 6살 터울이던 막내 고모와 할머니의 젖을 두고 싸우기도 했다.

"우리 엄마 몸도 약한데 나이 스물에 첫 애라고 나를 낳고 안아주지도 못했어. 그래서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는 내가 불쌍했던지 엄청 공을 들였어. 그때는 애들이 학교 다닐 나이 돼 서도 엄마 젖 만지고 그랬는데, 그것 때문에 우리 막내 고모랑 많이 싸웠지."

어른들이 소를 데리고 밭에 일하러 간 사이, 지난해 사고로 고인이 된 동생 김태룡 씨를 포함해 동생들을 돌보는 것도 김 할머니 몫이었다. 특히 연년생이었던 김태룡 씨와는 3, 4살 무렵부터 배냇머리를 잡고 싸우며 자랐다.

"옛날이었는데 딸이라고 구박받은 기억도 별로 없어. 할아버지, 할머니, 외삼촌, 고모들까지 다 날 귀여워했어. 첫 아이를 잘 키워야 집안이 선다면서. 우리 동생 태룡이랑 싸우면 '넌 누나가 돼서 동생이랑 싸우냐'고 나만 혼내셨는데 그거 하나는 어린 마음에 서러웠지."

◆월북한 삼촌이 집을 다녀간 지 11년 후

김 할머니는 스물한 살에 결혼해 세 아이를 뒀다. 친정에서 몸을 풀고 쉬던 1968년 어느 날, 6·25 전쟁 때 행방불명된 외삼촌 중 한 명이 집을 다녀갔다. 전쟁 때 잃어버린 가족의 생사를 몰라 제사를 지내던 시대였다. 김 할머니 가족은 집에 들른 외삼촌이 '북에서 왔는지, 서에서 왔는지'도 모른 채 눈물로 반가워하다 보냈다.

"삼촌들이 다들 고향에서 결혼도 하고 그랬는데 전쟁으로 북한에 넘어갔거든. 나도 우리 할머니 손잡고 갓 시집온 숙모들 본 기억이 나요. 우리 숙모들 참 예뻤는데, 자기 부인도 보고 싶고 그래서 왔겠지."

문제는 11년이 지난 1979년 찾아왔다. 느닷없이 들이닥친 경찰은 11년 전 친정을 들렸던 외삼촌이 간첩이라며 김 할머니를 잡아 갔다. 보리밭에서 일하던 부모님도, 100일된 아들을 둔 신혼의 동생 김태룡 씨도 함께였다. 지금 치유사진전이 열리는 남영동 대공분실 5층에서 모진 고문을 당했다. 정신이 아득해지는 고통 속 머릿속에는 밖에 두고 온 세 아이, 그리고 옆방에 갇힌 동생 김태룡 씨 걱정으로 가득 찼다.

"나는 '빨갱이, 빨갱이'하길래 빨간 모자를 쓰고 다녀서 빨갱이인가 했어. 내가 모른다하면 옆방에 내 동생을 고문하니까 모르는 일도 대답했지. 너무 몰라서 아무것도 모른다고 대답하면 '앙큼하다'고 또 때리더라고. 까무러쳤다 일어나면 또 우리 애들 걱정되는 거야."

삼척 고정간첩단 사건 피해자 김순자 씨가 12일 서울 용산구 민주인권기념관(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더팩트>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40년 전 김순자 씨와 가족은 이곳에 끌려와 모진 고문을 당했다. /이동률 기자

◆재심 청구한 피해자 두 번 죽인 사법부

분실을 나온 김 할머니를 기다린 건 일가족 12명을 '삼척 고정간첩단'으로 칭한 공소장이었다. 김 할머니의 아버지는 사형, 김태룡 씨를 비롯한 동생들은 무기징역, 김 할머니는 5년형을 선고받았다. 아버지는 1979년 12월 사형을 선고받은 후 상고심까지 갔지만 결국 1983년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항소심은 1980년 5월, 상고심은 1980년 9월에 끝나 가족 모두 중형이 확정됐다. 2년도 채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살아남은 가족들이 2010년 청구한 재심은 긴 싸움이 됐다.

김 할머니 등 가족 3명은 2013년 11월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 판결을 받았다. 나머지 가족 8명은 2014년 12월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검찰은 항소에 이어 상고까지 했다. 최초로 재심을 청구한지 6년 째 되던 2016년 5월,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19년 2개월을 복역한 후 사면된 김태룡 씨를 포함한 나머지 가족들도 비로소 누명을 벗을 수 있었다.

법이란 미명 하에 한 가족의 삶과 행복을 빼앗은 사건이었다. 30년이 넘는 세월에도 한국 사법부의 '법대로 괴롭힘'은 끝나지 않았다. 김 할머니와 가족들의 재심 기간 사법부의 수장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었다. 국가범죄 책임을 피하려던 정부를 의식해 국가 배상기준을 까다롭게 변경했다. 고문을 당했어도 기소되지 않았으면 배상을 받을 수 없었고, 배상금 청구 시효도 6개월로 제한됐다.

배상 판결을 받은 피해자들 중 일부는 자격에 못 미친다며 뒤늦게 배상금을 돌려내라는 판결을 받기도 했다. 고문 후유증으로 평생 고통받은 동생 김태룡 씨는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분실에서 김 할머니가 "모른다"고 대답할 때마다 보란 듯이 극심한 고문을 당했던 동생이었다. 이 때문에 김태룡 씨에 대한 죄책감을 달고 살던 김 할머니의 마음도 타들어 갔다. 지난해 10월 먼저 세상을 떠난 동생을 생각하면 김 할머니는 지금도 화가 치민다.

"내가 '우리 가족 인생 돌려내'라고 해도 그건 못하니 배상이라도 해달라는 거였는데 걔들은 예나 지금이나 법도 기준도 없더라고. 옛날에 배상받은 걸 대통령 바뀌었으니 내놓으라고 난리였어. 짐승도 실컷 먹고 배부르면 안 먹어. 자기들 잘 살려고 우리 피고름까지 짜내서 가져갔으면서 이제 와서 법 바뀌었다고 배상금도 도로 돌려달라니. 그건 사람 된 도리가 아니지."

"마지막으로 하실 말씀이 있냐",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계시냐" 등 미래에 관한 질문에 김순자 씨는 인간을 소중히 여기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대답만 반복했다. /이동률 기자

김 할머니의 가슴엔 억울한 옥살이를 하느라 자식에게 주지 못한 사랑이 한처럼 맺혔다. 한풀이를 하듯 손주를 보살피는 게 행복이라는 김 할머니의 꿈은 더 이상 국가가 국민이 고통 받는 일이 반복되지 않는 것이다. 보도연맹 사건, 제주 4.3사건, 여수 순천 10.19 사건, 2009년 용산 참사 등 무고한 국민이 희생된 현장을 방문하기도 했다. 어디로 여행을 떠나고 싶지는 않은지, 가지고 싶은 물건은 없는지 등을 물어도 대답은 언제나 "우리 같은 불행이 되풀이되지 않는 세상을 만드는 것"으로 돌아왔다.

"아버지가 일제 30년을 겪으며 '우리 애들은 이런 세월을 안 살아서 됐다'고 하셨어요. 나도 내 아이들에게 좋은 세상을 만들어 주고 싶어요. 나만 잘 산다고 다 잘 사는 게 아니야. 사람은 그렇게 살면 안돼. 한 인간의 생명은 만천하보다 귀하다고 했어. 사람을 가장 소중히 생각하는 세상을 만들고 싶어요."

ilrao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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